Poem 676

10월 - 오세영

10월 - 오세영 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Poem 2020.10.25

시월 - Robert Frost

시월 - Robert Frost 오, 고요하고 부드러운 시월의 아침이여 너의 잎새들은 곱게 단풍이 들어 곧 떨어질 듯하구나 만일 내일의 바람이 매섭다면 너의 잎새는 모두 떨어지고 말겠지 까마귀들이 숲에서 울고 내일이면 무리 지어 날아가겠지 오, 고요하고 부드러운 시월의 아침이여 오늘은 천천히 전개하여라 하루가 덜 짧아 보이도록 하라 속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의 마음을 마음껏 속여 보아라 새벽에 한 잎 정오에 한 잎씩 떨어뜨려라 한 잎은 이 나무, 한 잎은 저 나무에서 자욱한 안개로 해돋이를 늦추고 이 땅을 자줏빛으로 흘리게 하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미 서리에 말라버린 포도나무 잎새를 위해서라도 주렁주렁한 포도송이 상하지 않게 담을 따라 열린 포도송이를 위해서라도

Poem 2020.10.18

가을 편지1- 4 - 이해인

가을 편지1- 4 - 이해인 1. 그 푸른 하늘에 당신을 향해 쓰고 싶은 말들이 오늘은 단풍잎으로 타버립니다 밤새 산을 넘은 바람이 손짓을 하면 나도 잘 익은 과일로 떨어지고 싶습니다 당신 손 안에 2. 호수에 하늘이 뜨면 흐르는 더운 피로 유서처럼 간절한 시를 씁니다 당신의 크신 손이 우주에 불을 놓아 타는 단풍잎 흰 무명옷의 슬픔들을 다림질하는 가을 은총의 베틀 앞에 긴 밤을 밝히며 결 고운 사랑을 짜겠습니다 3. 세월이 흐를수록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옛적부터 타던 사랑 오늘은 빨갛게 익어 터질 듯한 감 홍시 참 고마운 아픔이여 4. 이름 없이 떠난 이들의 이름 없는 꿈들이 들국화로 피어난 가을 무덤 가 흙의 향기에 취해 가만히 눈을 감는 가을 이름 없이 행복한 당신의 내가 가난하게 떨어져 누울 날은..

Poem 2020.10.10

사람의 이름이 향기다 / 이기철

+ 사람의 이름이 향기이다 / 이기철 ​ 아름다운 내일을 기다리기에 사람들은 슬픔을 참고 견딘다 아름다운 내일이 있기에 풀잎이 들판에 초록으로 피어나고 향기로운 내일이 있기에 새들은 하늘에 노래를 심는다 사람이 사람 생각하는 마음만큼 이 세상 아름다운 것은 없다 아름다운 사람의 이름이 노래가 되고 향기로운 사람의 얼굴이 꽃이 된다 이름 부를 사람 있기에 이 세상 넉넉하고 그리워할 사람 있기에 우리 삶 부유하다

Poem 2020.10.04

가을엔 / 조병화

'가을엔' / 조병화 "가을엔 우리 고개 숙입시다. 맑게 비워낸 경건한 마음으로 가을엔 우리 서로 고개 숙입시다. 높아가는 가을하늘이 두고 가는 이 무거운 사랑, 그 무거운 사랑을 이어받아 고운 마음으로, 고운 마음으로 깊이 간직하면서 그 소중함을 가득히 가을엔 우리 서로 고개 숙입시다. 기도와 같은 순결한 마음을 깨워 우주 만물에 감사를 하며 더욱 익어가는 사랑을 뜨겁게 안고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가 없어 떠나는 것들에게 눈물로, 눈물로 작별을 하면서 남은 것들끼리 슬픔을 서로 나누어 가며 우리도 언젠가는 떠날 그날을 준비하면서 가을엔, 그 가을엔 우리 서로 고개 숙여 서로 곁에 있다는 걸 감사합시다." >

Poem 2020.09.27

가을꽃 / 정호승

가을꽃 / 정호승 이제는 지는 꽃이 아름답구나 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 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 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을 들고 서있던 거리에도 종소리처럼 낙엽은 떨어지고 황국도 꽃을 떨고 뿌리를 내리나니 그동안 나를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고 눈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 물 깊은 밤 차가운 땅에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

Poem 2020.09.20

가을에... - 오세영

가을에 - 오 세영 너와 나 가까이 있는 까닭에 우리는 봄이라 한다 서로 마주하며 바라보는 눈빛 꽃과 꽃이 그러하듯.... 너와나 함께 있는 까닭에 우리는 여름이라 한다 부벼대는 살과 살 그리고 입술 무성한 잎들이 그러하듯... 아, 그러나 시방 우리는 각각 홀로 있다 홀로 있다는 것은 멀리서 혼자 바라만 본다는 것 허공을 지키는 빈 가지처럼 가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September - Tim Janis

Poem 2020.09.13

가을 편지 – 고정희

가을 편지 – 고정희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가을이 흑룡강 기슭까지 굽이치는 날 무르익을 수 없는 내 사랑 허망하여 그대에게 가는 길 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길이 있어 마음의 길은 끊지 못했습니다 황홀하게 초지일관 무르익은 가을이 수미산 산자락에 기립해 있는 날 황홀할 수 없는 내 사랑 노여워 그대 향해 열린 문 닫아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문이 있어 마음의 문을 닫지 못했습니다 작별하는 가을의 뒷모습이 수묵색 눈물 비에 젖어 있는 날 작별할 수 없는 내 사랑 서러워 그대에게 뻗은 가지 잘라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무성한 가지 있어 마음의 가지는 자르지 못했습니다 길을 끊고 문을 닫아도 문을 닫고 가지를 잘라도 저녁 강물로 당도하는 그대여 그리움에 재갈을 물리고 움트는 생각에 바윗돌 눌러도 ..

Poem 2020.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