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봄 비 / 이재무

차 지운 2019. 3. 31. 14:52



      * 봄 비 / 이재무

      1
      봄비의 혀가
      초록의 몸에 불을 지른다
      보라, 젖을수록
      깊게 불타는 초록의 환희
      봄비의 혀가
      아직, 잠에 혼곤한
      초록을 충동질한다
      빗속을 걷는
      젊은 여인의 등허리에
      허연 김 솟아오른다

      2
      사랑의 모든 기억을 데리고 강가에 가다오
      그리하여 거기 하류의 겸손 앞에 무릎 꿇고 두 손 모으게 해다오
      살 속에 박힌 추억이 젖어 떨고 있다
      어떤 개인 날 등 보이며 떠나는 과거의 옷자락이
      보일 때까지 봄비여,
      내 낡은 신발이 남긴 죄의 발자국 지워다오

      3
      나를 살다간 이여, 그러면 안녕,
      그대 위해 쓴 눈물 대신 어린 묘목 심는다
      이 나무가 곧게 자라서
      세상 속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가지마다 그리움의
      이파리 파랗게 반짝이고
      한 가지에서 또 한 가지에로
      새들이 넘나들며 울고
      벌레들 불러들여 집과 밥을 베풀고
      꾸중 들어 저녁밥 거른 아이의 쉼터가 되고
      내 생의 사잇길 봄비에 지는 꽃잎으로
      붐비는, 이 하염없는 추회
      둥근 열매로 익어간다면
      나를 떠나간 이여, 그러면 그대는 이미
      내 안에 돌아와 웃고 있는 것이다
      늦도록 늦봄 싸돌아다닌 뒤
      내 뜰로 돌아와 내 오랜 기다림의 묘목 심는다




                                                                                'Poem'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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