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나이 / 문정희

차 지운 2017. 7. 19. 11:30



Vilhelm Hammershøi


        + 나이 / 류시화

        누군가 나에게 나이를 물었지
        세월 속에 희끗희끗해진 머리를 보고 난 뒤
        내 이마의 주름살들을 보고 난 뒤
        난 그에게 대답했지
        내 나이는 한 시간이라고
        사실 난 아무것도 세지 않으니까
        게다가 내가 살아 온 세월에 대해서는

        그가 나에게 말했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설명해 주세요
        그래서 난 말했지
        어느 날 불시에 나는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에게
        입을 맞추었지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입맞춤을
        나의 날들이 너무도 많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만을 세지
        왜냐하면
        그 순간이 정말로 나의 모든 삶이었으니까




        + 나이 / 문정희

        몇 굽이 암벽을 오르니 드디어 설원
        나무 한 그루 온몸 비틀며
        앙상한 생명을 증거하고 있다
        하늘과 대결하고 있지만
        입술로 사랑할 일도 많지 않으니
        회오리도 햇살도 부드럽기만 하다
        이제 나에게 나이란 없다
        없기로 했다
        오직 홀로의 등정이 있을 뿐
        스승도 더 이상 필요 없을 것 같다
        나이면 다이다
        그 말고 누가 더 정확하게
        이 아찔한 기상도와
        주거부정 철새의 길을 일러줄 수 있단 말인가
        찬바람 머리칼처럼 쓸어 넘기며
        가만히 서 있어도 무너지는 폐허!
        이윽고 여기가 정상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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