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676

그대에게 보내는 12월의 편지

그대에게 보내는 12월의 편지 藝香 도지현 진홍으로 물든 단풍이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언제부터인가 나무가앙상한 나목으로 변했습니다. 자식을 길러 다 떠나보낸엄마의 모습이 저렇게 앙상할까요?그렇게 생각하니 울 엄마가 생각나그래서 젖가슴이 바람벽이 되었나 봐요 얼마 뒤엔 하얀 솜옷을 입고포근하고 따뜻하다고 미소를 띠고겨울의 축복에 혜택을 입고스스로 만족하며 봄을 잉태하겠죠 하얀 눈이 온 세상에 내려오염에 찌든 보기 싫은 것들을 덮어설국으로 만들어 기쁨을 주겠죠벌써 그대를 만난 듯 가슴이 설렙니다

Poem 2021.12.11

11월 / 오세영

11월 오세영​ 지금은 태양이 낮게 뜨는 계절, 돌아보면 다들 떠나갔구나, 제 있을 꽃자리 제 있을 잎자리 빈 들을 지키는 건 갈대뿐이다 상강(霜降) 서릿발 차가운 칼날 앞에서 꽃은 꽃끼리, 잎은 잎끼리 맨땅에 스스로 목숨을 던지지만 갈대는 호올로 빈 하늘을 우러러 시대를 통곡한다 시들어 썩기보다 말라 부서지기를 택하는 그의 인동(忍冬) 갈대는 목숨들이 가장 낮은 땅을 찾아 몸을 눕힐 때 오히려 하늘을 향해 선다 해를 받든다

Poem 2021.11.07

낙엽 - 레미 드 구르몽

낙엽 - 레미 드 구르몽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1892년 간행된 레미 드 구르몽의 시집 《시몬 La Simone》에 수록되어 있다. 이..

Poem 2021.10.31

시월은 또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릴 것이다- 이 기철

시월은 또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릴 것이다... 시월의 맑고 쓸쓸한 아침들이 풀밭 위에 내려와 있다 풀들은 어디에도 아침에 밟힌 흔적이 없다 지난 밤이 넓은 옷을 벗어 어디에 걸어놓았는지 가볍고 경쾌한 햇빛만이 새의 부리처럼 쏟아진다 언제나 단풍은 예감을 앞질러 온다 누가 푸름이 저 단풍에게 자리를 사양했다고 하겠는가 뜨거운 것들은 본래 붉은 것이다 여윈 줄기들이 다 못 다독거린 제 삶을 안고 낙엽 위에 눕는다 낙엽만큼 쓸쓸한 생을 가슴으로 들으려는 것이다 욕망을 버린 나뭇잎들이 몸을 포개는 기슭은 슬프고 아름답다 이곳에서는 흘러가버릴 것들, 부서질 것들만 그리워해야 한다 이제 나무들이 푸른 이파리들을 내려놓고 휴식에 들 때이다 새들과 들쥐들이야 몇 개의 곡식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망각만큼 편안한 것은 없..

Poem 2021.10.03

달빛 기도 - 이해인

달빛 기도 - 이해인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 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 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Poem 2021.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