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기다림은 나무를 키 크게 한다 / 이기철

차 지운 2017. 1. 15. 17:03


Evening Figuers
Lithograph
1979

        기다림은 나무를 키 크게 한다 / 이기철

        기다림은 나무를 키 크게 한다
        햇살이 순금의 얼굴로 찾아오면
        길 위를 지나는 사람의 마음이
        오전의 풀밭 같이 푸르러진다
        꽃들이 열매가 되기까지는
        바쁜 마음을 내려놓고
        돌멩이처럼 기다리자
        바람이 그 여린 손으로 길을 쓸 때까지는,
        밤에는 외로움을 이긴 나무들이
        욕망을 이긴 성자 같다
        바람이 나뭇잎의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샘물이 땅 위로 솟는다
        물소리는 들길을 씻느라 바쁘고
        언덕은 놀 한 겹 다시 거는 일로 분주하다
        어찌하면 저 굳게 닫힌 집들의 입을 열어
        나와 함께 맑은 노랠 부르게 할까
        아침이 오면 금새 밝아지는 마을과
        오래된 집들에 새 문고리를 달아주자
        그들의 하루가 햇빛처럼 신선해지도록
        그들의 하루가 노래처럼 즐거워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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