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가을을 보내며 1, 2 / 고정희

차 지운 2018. 11. 5. 11:00



Vincent van Gogh



        가을을 보내며 1 / 고정희

        사랑하는 이여
        우리가 한 잔에서 목 축이지 못하는 오늘은
        우리들 겸허한 허리를 구부려
        서로의 잔에 그리움을 붓자
        서로의 잔이 넘치게 하자




      가을을 보내며 2 / 고정희

      성전의 두 기둥처럼 붙박힌 것이
      어디 우리들 마음 뿐이랴
      가을산에 올라 들을 내려다보면
      흐르는 모든 것은
      어제 있던 그 자리에서 흐르고
      작은 풀꽃 하나가
      지구의 회전을 다스리기 위해서
      하늘과 땅 사이 뿌리박고 섰나니
      내가 그대 춤 속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그대가 나의 근심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우리들 뿌리의 참담한 정돈을 어찌 외롭다 말할 수 있으랴
      오솔길에 지는 것들은 뻗어 뿌리로 손잡으리니
      우리가 한잔에서 목 축이지 못하는 오늘은
      그대여, 우리들 겸허한 허리를 구부려
      서로의 잔이 넘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