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11월 /최갑수

차 지운 2020. 11. 1. 11:55








가을타는 여자



            11월  /최갑수

             

            저물 무렵 마루에 걸터앉아

            오래 전 읽다 놓아두었던 시집을

            소리내어 읽어본다

            11월의 짦은 햇빛은

            뭉툭하게 닳은 시집 모서리

            그리운 것들

            외로운 것들, 그리고 그 밖의

            소리나지 않는 것들의 주변에서만

            잠시 어룽거리다 사라지고

            여리고 순진한

            사과 속 같은 11월의 그 햇빛들이

            머물렀던 자리 11월의 바람은 또 불어와

            시 몇 편을 슬렁슬렁 읽어내리고는

            슬그머니 뒤돌아서 간다

            그 동안의 나는

            누군가가 덮어두었던 오래된 시집

            바람도 읽다 만

            사랑에 관한 그렇고 그런

            서너 줄 시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길을 걷다 무심코 주워보는 낙엽처럼

            삶에 관한 기타 등등이 아니었을까,

            시집을 덮고 고개를 들면

             더 이상 그리워할 일도

            사랑할 일도 한 점 남아 있지 않은

            담담하기만 한 11월의 하늘

            시집 갈피 사이

            갸웃이 얼굴을 내민 단풍잎 한 장이

            오랜만에 만난 첫 사랑처럼

            낯설고 겸연쩍기만 한데






 HAUSER - Waltz No. 2 (Shostakov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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