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그대 / 정두리

차 지운 2017. 3. 16. 11:28


Oscar Törna

      그대 / 정두리

      우리는 누구입니까
      빈 언덕의 자운영꽃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반짝이는 조약돌
      이름을 얻지 못할 구석진 마을의 투명한 시냇물
      일제히 흰 띠를 두르고 스스로 다가오는 첫눈입니다

      우리는 무엇입니까
      늘 앞질러 사랑케 하실 힘
      덜어내고도 몇 배로 다시 고이는 힘
      아! 한목에 그대를 다 품을 수 있는 씨앗으로 남고 싶습니다
      허물없이 맨발이 넉넉한 저녁입니다
      뜨거운 목젖까지 알아내고도 코끝으로까지
      발이 저린 우리는 나무입니다

      우리는 어떤 노래 입니까
      이노리나무 정수리에 낭낭 걸린 노래 한 소절
      아름다운 세상을 눈물 나게 하는
      눈물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그대와 나는 두고 두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네게로 이르는 길

      네가 깨끗한 얼굴로 내게로 되돌아 오는 길
      그대와 나는 내리 내리 사랑하는 일만
      남겨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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