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 박인환

차 지운 2016. 12. 21. 13:46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 박인환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 모두 미래의 시간에 존재하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포함된다. - T. S. 엘리엇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와 우리들의 죽음보다도

더한 냉혹하고 절실한

회상과 체험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여러 차례의 살육(殺戮)에 복종한 생명보다도

더한 복수와 고독을 아는

고뇌와 저항일지도 모른다.

 

한 걸음 한 걸음 나는 허물어지는

정적(靜寂)과 초연(硝煙)의 도시 그 암흑 속에서.

명상과 또다시 오지 않을 영원한 내일로.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유형(流刑)의 애인처럼 손잡기 위하여

이미 소멸된 청춘의 반역(反逆)을 회상하면서

회의과 불안만이 다정스러운

모멸(侮蔑)의 오늘을 살아 나간다.

 

아 최후로 이 성자의 세계에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분명히

그것은 속죄의 회화(繪畵) 속의 나녀(裸女)

회상도 고뇌도 이제는 망령(亡靈)에게 팔은

철없는 시인(詩人)

나의 눈 감지 못한

단순한 상태의 시체일 것이다.

  


 

  

(The Saddest thing - Melanie Safka )

 



 

'Poem'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노래 / 이해인  (0) 2016.12.24
더 깊은 사랑속으로 / 슈잔폴리스슐츠  (0) 2016.12.22
송년회 / 목필균  (0) 2016.12.20
낙엽 - 이생진  (0) 2016.12.17
또 한해를 보내면서 / 김홍성  (0) 2016.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