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비상 / 김재진

차 지운 2016. 8. 3. 17:24



        비상 / 김재진

        잠들지 마라 내 영혼아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연 농아처럼
        하염없는 길을 걸어 비로소 빛에 닿는
        생래의 저 맹인처럼
        살아 있는 것은 저마다의 빛깔로
        부시시 부시시 눈부실 때 있다

        우리가 일어서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넘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내다 버리고 싶어도 버리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이 인생
        덫에 치어 버둥거리기만 하는
        짐승의 몸부림을 나는 이제
        삶이라 부르지 않겠다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는 숨막힘
        사방으로 포위된 무관심 속으로 내가 간다
        단순히 우리가 일어서지 못하는 것은
        넘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모든 넘어진 것들이 일어서지 못하는 것은
        그렇듯 넘어짐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일으켜 세우는 자 없어도 때가 되면
        넘어진 자들은 스스로 일어나는 법
        잠들지 마라 내 영혼아
        바닥에 닿은 이마 들어 지평선 위로
        어젯밤 날개를 다쳤던 한 마리 새가
        힘겹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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