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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hoven Piano Concerto No.3 in C minor, op.37

차 지운 2021. 4. 4. 12:19

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제3번



Beethoven Piano Concerto No.3 in C minor, op.37 
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제3번

Beethoven (1770 - 1827)
1 Allegro con brio,     2 Largo,     3 Rondo. Allegro

Krystian Zimerman, piano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Leonard Bernstein, conductor

 이 작품은 베토벤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c단조 조성으로 되어있고 오늘날 가장 자주 연주되는 피아노 협주곡 중 한 곡이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4번〉의 영향을 받은 이 작품은 모차르트의 것과 마찬가지로 마지막까지 오케스트라와 독주 피아노의 미묘한 주고받음을 통해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초연 당시 베토벤이 솔로 피아노를 맡아 연주했는데, 카덴차를 즉흥으로 연주한 일은 잘 알려진 에피소드이다.


7시간이 넘었던 연주 당일 리허설이 곡에 대한 당시 평론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빈의 어느 한 평론가는 베토벤의 연주가 청중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피아노 협주곡 3번〉과 함께 연주되었던 베토벤의 오라토리오 〈감람산의 그리스도〉의 트롬본 파트 역시 연주 직전에 가서야 완성될 정도로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초연무대는 끝까지 작곡가의 애간장을 태웠던 것 같다. 결국 초연 무대의 리허설은 장장 7시간이 계속되었고, 연주회가 임박할 때까지 베토벤은 매우 예민한 작곡가로서 연주자로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괴롭힌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연주회가 임박해서 이 연주회에서 연주될 몇몇 곡들은 바뀌기에 이르렀고, 연주는 예상했던 것보다 긴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인고의 시간을 보낸 끝에 완성베토벤이 c단조의 피아노 협주곡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미 1796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베토벤의 초기의 생각들은 그가 작곡의 아이디어들을 단편적으로 적어놓은 스케치북에 잘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이 작품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1799년 가을에서부터였다. 그렇게 해서 1악장은 세기의 전환기인 1800년 4월 2일에 작곡되었다. 하지만 베토벤은 잠시 이 프로젝트를 떠났다가 1802년이 되어서야 다시 이 곡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떤 이유 때문이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이 곡으로부터 2년이나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쉽게 완성되지 않았다. 결국 곡의 완성은 1년이 더 미루어졌고, 이 곡은 1803년 4월 5일이 되어서야 초연되었다. 이 초연에서 베토벤은 1악장의 카덴차를 즉흥 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초연으로부터 다시 6년이 지난 1809년 그는 〈피아노 협주곡 3번〉에 걸맞은 카덴차를 작곡하여 세상에 내놓는다. 오늘날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연주에 보통 사용되는 카덴차는 베토벤이 작곡한 이 카덴차이다. 곡은 프러시아아의 루이 페르디난트 왕자에게 헌정되었다.

하이든과의 수업 이후베토벤은 1792년 독일 본에서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사했다. 이 이사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요제프 하이든에게 배우기 위해서였다. 당시 하이든은 이미 ‘작곡의 신’의 반열에 올라 독일, 오스트리아를 넘어 영국, 프랑스에서까지 추앙을 받는 전설적인 작곡가의 반열에 들어있었다. 비록 하이든과의 수업은 매우 드물게 열렸고, 그다지 큰 수확을 얻지도 못했지만, 베토벤은 이 노(老)대가의 작품을 굉장히 존경했고, 자신의 교향곡의 모델로 삼았다. 이러한 하이든에 대한 존경심은 그의 초기 교향곡들과 협주곡들에서 잘 나타난다.


모차르트의 c단조 협주곡을 모범으로하지만 〈피아노 협주곡 3번〉과 관련되어서 가장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 보이는 작품은 다름 아닌 모차르트의 같은 c단조 작품 〈피아노 협주곡 24번〉(K.491)이다. 베토벤은 하이든 못지않게 모차르트 역시 깊이 존경했고, 그의 작품들을 매우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베토벤은 길을 걷다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요한 밥티스트 크라머(Johann Baptist Cramer, 1771~1858)가 연주하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4번〉을 듣게 된다.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이 곡의 아름다운 모티브에 온 주의를 쏟게 된다. “크라머! 크라머! 우리는 절대 이런 곡을 만들어낼 수 없을 걸세!” 이것은 크라머의 부인이 전해주는 이야기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이렇게 쓴다. “베토벤은 몸을 앞으로 뒤로 흔들면서 리듬을 느꼈고,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이 진심으로 이 곡에서 느끼는 기쁨을 표현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4번〉을 들어본 감상자라면 아마도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카덴차는 즉흥연주로1800년 베토벤은 빈의 궁정극장에서 자신의 첫 번째 음악회를 기획하고 있었다. 이 음악회의 프로그램에는 모차르트의 교향곡과 하이든이 새롭게 작곡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의 일부, 자신의 피아노 즉흥연주, 그리고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한 곡(아마도 1번 협주곡)과 새로 작곡된 베토벤의 작품, 즉 〈7중주〉와 〈교향곡 1번〉이 계획되었다. 원래 이 음악회에서 베토벤이 생각하고 있었던 협주곡은 1번이 아니라 3번이었다. 그러나 그는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완성하지 못했고, 당시 2악장의 스케치까지밖에 완성하지 못했다. 베토벤을 끝까지 망설이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피아노 파트였다. 그는 결국 피아노 카덴차를 완성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었다. 이미 즉흥연주로 이름을 날렸던 베토벤은 그것을 실제 초연에서도 즉흥연주로 대신해냈다.




Beethoven Piano Concerto No.3 in C minor, op.37

 

Daniel Barenboim
Orchester der Wiener Staatsoper 
Laszlo Somogyi


1 Allegro con brio,     
1악장은 기존의 고전시대의 협주곡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는 동시에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4번〉에 특별한 경의를 표시하는 듯하다. 대부분의 고전시대의 협주곡 1악장이 오케스트라의 마무리로 끝을 맺는 데에 비해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4번〉은 마지막까지 솔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미묘한 주고받음으로 끝을 맺는다. 베토벤이 이 곡에서 보여주는 것도 이와 정확히 일치한다. 카덴차가 등장한 뒤에 베토벤은 코다를 시작하고, 이 부분에서 피아노는 계속해서 아르페지오와 다른 표현적인 모티브들을 통해 오케스트라와의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2 Largo,    
E장조의 라르고로 되어 있는 2악장은 피아노로 시작된다. 고요한 고귀함을 잃지 않는 노래로 시작되는 이 악장은 상상력이 넘치는 오케스트레이션의 뒷받침으로 전체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특히 베토벤이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의 조력은 주목할 만하다.

 

 

 3 Rondo. Allegro
마지막 악장 역시 피아노의 솔로로 시작된다. 음악은 점차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집시풍’을 만들어낸다. 이 진행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솔로 카덴차가 등장하고, 음악은 마지막에 이르러서 C장조로 옮겨가서 승리에 찬 노래로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