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환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와 우리들의 죽음보다도 더한 냉혹하고 절실한 회상과 체험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여러 차례의 살육(殺戮)에 복종한 생명보다도 더한 복수와 고독을 아는 고뇌와 저항일지도 모른다.
한 걸음 한 걸음 나는 허물어지는 정적(靜寂)과 초연(硝煙)의 도시 그 암흑 속으로 ……. 명상과 또다시 오지 않을 영원한 내일로 …….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유형(流刑)의 애인처럼 손잡기 위하여 이미 소멸된 청춘의 반역(反逆)을 회상하면서 회의와 불안만이 다정스러운 모멸(侮蔑)의 오늘을 살아 나간다.
…… 아 최후로 이 성자(聖者)의 세계에 살아 있는 것이 있다면 분명히 그것은 속죄의 회화(繪畵) 속의 나녀(裸女)와 회상도 고뇌도 이제는 망령(亡靈)에게 팔은 철없는 시인(詩人) 나의 눈 감지 못한 단순한 상태의 시체일 것이다 …….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오규원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리면서 스스로 살아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많은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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