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의 달밤, 2005 강요배
여름의 달밤 /김소월
서늘하고 달 밝은 여름 밤이여 구름조차 희미한 여름 밤이여 그지없이 거룩한 하늘로써는 젊음의 붉은 이슬 젖어 내려라.
행복(幸福)의 맘이 도는 높은 가지의 아슬아슬 그늘 잎새를 배불러 기어 도는 어린 벌레도 아아 모든 물결은 복(福)받았어라.
뻗어 뻗어 오르는 가시덩굴도 희미(稀微)하게 흐르는 푸른 달빛이 기름 같은 연기(煙氣)에 멱감을러라. 아아 너무 좋아서 잠 못 들어라.
우긋한 풀대들은 춤을 추면서 갈잎들은 그윽한 노래 부를 때. 오오 내려 흔드는 달빛 가운데 나타나는 영원(永遠)을 말로 새겨라.
자라는 물벼 이삭 벌에서 불고 마을로 은(銀) 슷듯이 오는 바람은 눅잣추는 향기(香氣)를 두고 가는데 인가(人家)들은 잠들어 고요하여라.
하루 종일(終日) 일하신 아기 아버지 농부(農夫)들도 편안(便安)히 잠들었어라. 영 기슭의 어득한 그늘 속에선 쇠스랑과 호미뿐 빛이 피어라.
이윽고 식새리소리는 밤이 들어가면서 더욱 잦을 때 나락밭 가운데의 우물 물가에는 농녀(農女)의 그림자가 아직 있어라.
달빛은 그무리며 넓은 우주(宇宙)에 잃어졌다 나오는 푸른 별이요. 식새리의 울음의 넘는 곡조(曲調)요. 아아 기쁨 가득한 여름 밤이여.
삼간집에 불붙는 젊은 목숨의 정열(情熱)에 목맺히는 우리 청춘(靑春)은 서늘한 여름 밤 잎새 아래의 희미한 달빛 속에 나부끼어라.
한때의 자랑 많은 우리들이여 농촌(農村)에서 지나는 여름보다도 여름의 달밤보다 더 좋은 것이 인간(人間)에 이 세상에 다시 있으랴.
조그만 괴로움도 내어버리고 고요한 가운데서 귀기울이며 흰달의 금물결에 노(櫓)를 저어라 푸른 밤의 하늘로 목을 놓아라.
아아 찬양(讚揚)하여라 좋은 한때를 흘러가는 목숨을 많은 행복(幸福)을. 여름의 어스러한 달밤 속에서 꿈같은 즐거움의 눈물 흘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