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가을 / 조병화

차 지운 2015. 10. 20. 16:34

      가을 / 조병화

      이제 일년내 맡고 계시던
      그 눈을 돌려 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당신 뜻대로 가을은 이루어져갑니다
      당신 뜻대로 이루어지는 가을을
      하나, 하나, 주워 모으기 위하여 떠나려는 내게
      이제, 일년내 맡고 계시던
      그 눈을 돌려 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실로 많은 것들이 끝을 지어갑니다
      대지에선 동식물들이 그 번식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뜻대로 그 열매들이 남아갑니다
      하늘에선 태양과 구름이 그 가뭄과 홍수를 거둬 들였습니다
      그리고 당신 뜻대로 다시, 빈 천지가 마련되어 갑니다
      사람에선 사랑과 미움이 그 스스로의 맺음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당신 뜻대로 고독한 혼자들이 남아갑니다
      그 열매들을 당신 뜻대로 주워 모으기 위하여
      떠나려는 내게
      맡으신 그 눈을 이제 돌려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 가득찬 빈 천지에 새 봄을 마련하기 위하여
      떠나려는 내게
      맡으신 그 눈을 이제 돌려 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 고독한 혼자들에게 당신의 뜻을 전하기 위하여
      떠나려는 내게
      맡으신 그 눈을 이제 돌려 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맑게 닦아내 주십시오
      흐린 점 하나 없이 맑게 닦아 내 주십시오
      당신의 입김으로
      티 하나 없이 맑게 닦아 내 주십시오
      도시에선 되도록이면 담가로
      돌아다니겠습니다
      전원에선 물가로 둑으로 산록山麓으로
      되도록이면 잡목림, 잡초 속으로
      돌아다니겠습니다
      밤에는 별에서 쉬겠습니다
      되도록이면 새로운 별을 찾아
      좀 떨어진 곳에서 쉬겠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돌아오겠습니다
      빈 손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모든 거 다, 당신 뜻대로 살펴 제자리 가려두고
      지닌 거 하나 없이 혼자서 돌아오겠습니다
      수고는
      봄으로 해 주십시오
      눈을 다시 돌려 드릴 때
      수고의 말씀
      봄에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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