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 조병화 이제 일년내 맡고 계시던 그 눈을 돌려 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당신 뜻대로 가을은 이루어져갑니다 당신 뜻대로 이루어지는 가을을 하나, 하나, 주워 모으기 위하여 떠나려는 내게 이제, 일년내 맡고 계시던 그 눈을 돌려 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실로 많은 것들이 끝을 지어갑니다 대지에선 동식물들이 그 번식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당신 뜻대로 그 열매들이 남아갑니다 하늘에선 태양과 구름이 그 가뭄과 홍수를 거둬 들였습니다 그리고 당신 뜻대로 다시, 빈 천지가 마련되어 갑니다 사람에선 사랑과 미움이 그 스스로의 맺음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당신 뜻대로 고독한 혼자들이 남아갑니다 그 열매들을 당신 뜻대로 주워 모으기 위하여 떠나려는 내게 맡으신 그 눈을 이제 돌려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 가득찬 빈 천지에 새 봄을 마련하기 위하여 떠나려는 내게 맡으신 그 눈을 이제 돌려 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 고독한 혼자들에게 당신의 뜻을 전하기 위하여 떠나려는 내게 맡으신 그 눈을 이제 돌려 주실 때가 되었습니다 맑게 닦아내 주십시오 흐린 점 하나 없이 맑게 닦아 내 주십시오 당신의 입김으로 티 하나 없이 맑게 닦아 내 주십시오 도시에선 되도록이면 담가로 돌아다니겠습니다 전원에선 물가로 둑으로 산록山麓으로 되도록이면 잡목림, 잡초 속으로 돌아다니겠습니다 밤에는 별에서 쉬겠습니다 되도록이면 새로운 별을 찾아 좀 떨어진 곳에서 쉬겠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돌아오겠습니다 빈 손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모든 거 다, 당신 뜻대로 살펴 제자리 가려두고 지닌 거 하나 없이 혼자서 돌아오겠습니다 수고는 봄으로 해 주십시오 눈을 다시 돌려 드릴 때 수고의 말씀 봄에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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