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여름일기 / 이해인

차 지운 2018. 6. 28. 13:36



제프리 T 라슨 >



        여름 일기 /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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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엔
        햇볕에 춤추는 하얀 빨래처럼
        깨끗한 기쁨을 맛보고 싶다
        영혼의 속까지 태울 듯한 태양 아래
        나를 빨아 널고 싶다
        여름엔
        햇볕에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향기로운 매일을 가꾸며
        향기로운 땀을 흘리고 싶다
        땀방울마저도 노래가 될 수 있도록
        뜨겁게 살고 싶다
        여름엔
        꼭 한 번 바다에 가고 싶다
        바다에 가서
        오랜 세월 파도에 시달려 온
        섬 이야기를 듣고 싶다
        침묵으로 엎디어 기도하는 그에게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 오고 싶다





        2
        오늘 아침
        내 마음의 밭에는
        밤새 봉오리로 맺혀있던
        한 마디의 시어가
        노란 쑥갓꽃으로 피어 있습니다.
        비와 햇볕이 동시에 고마워서
        자주 하늘을 보는 여름
        잘 익은 수박을 쪼개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 초록의 기쁨이여
        우리가 사는 지구 위에도
        수박처럼 둥글고 시원한
        자유와 평화 가득한 여름이면 좋겠습니다.
        오는 아침 나는 다림질한 흰 옷에
        물을 뿌리며 생각합니다.
        우울과 나태로 풀기없던 나의 일상을
        희망으로 풀먹여 다림질해야겠음을
        지금쯤 바쁜 일터로 향하는
        나의 이웃을 위해
        한 송이의 기도를 꽃피워야겠음을...



        3
        아무리 더워도
        덥다고
        불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차라리
        땀을 많이 흘리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일하고 사랑하고
        인내하고 용서하며
        해 아래 피어나는
        삶의 기쁨속에
        여름을 더욱 사랑하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4
        떠오르는 해를 보고
        멀리서도 인사하니
        세상과 사람들이
        더 가까이
        웃으며 걸어옵니다.
        이왕이면
        붉게 뜨겁게
        살아야 한다고
        어둡고 차갑고
        미지근한 삶은
        죄가 된다고
        고요히 일러주는 나의 해님
        아아,
        나의 대답은
        말 보다 먼저 또 오르는
        감탄사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