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자화상 / 유안진

차 지운 2017. 11. 14. 11:09

Peter Mitchev




      자화상 / 유안진

      한 오십년 살고보니
      나는 나는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라
      눈과 서리와 비와 이슬이
      강물과 바닷물이 뉘기 아닌 바로 나였음을 알아라

      수리부엉이 우는 이 겨울도 한밤중
      뒷뜰 언 밭을 말달리는 눈바람에
      마음 헹구는 바람의 연인
      가슴속 용광로에 불지피는 황홀한 거짓말을

      오오 미쳐볼 뿐 대책없는 불쌍한 희망을
      내 몫으로 오늘 몫으로 사랑하여 흐르는 일
      삭아질수록 새우젓갈 맛나듯이
      때얼룩에 쩔을수록 인생다워지듯이

      산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때묻히고 더럽혀지며
      진실보다 허상에 더 감동하며
      정직보다 죄업에 더 집착하며

      어디론가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나란히 누웠어도 서로 다른 꿈을 꾸며
      끊임없이 떠나고 떠도는 것이다
      멀리 멀리 떠나갈수록

      가슴이 그득히 채워지는 것이다
      갈 데까지 갔다가는 돌아오는 것이다
      하늘과 땅만이 살 곳은 아니다
      허공이 오히려 살 만한 곳이며

      떠돌고 흐르는 것이 오히려 사랑하는 것이다

      돌아보지 않으리
      문득 돌아보니
      나는 나는 흐르는 구름의 딸이요
      떠도는 바람의 연인이라.





                                                                'Poem'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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