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시 – 김현승
넓이와 높이보다 내게 깊이를 주소서, 나의 눈물에 해당하는……
산비탈과 먼 집들에 불을 피우시고 가까운 곳에서 나를 배회하게 하소서.
나의 공허를 위하여 오늘은 저 황금빛 열매를 마저 그 자리를 떠나게 하소서. 당신께서 내게 약속하신 시간이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기적들을 해가 지는 먼 곳으로 따라 보내소서. 지금은 비둘기 대신 저 공중으로 산까마귀들을 바람에 날리소서. 많은 진리들 가운데 위대한 공허를 선택하여 나로 하여금 그 뜻을 알게 하소서
이제 많은 사람들이 새 술을 빚어 깊은 지하실에 묻을 시간이 오면, 나는 저녁 종소리와 같이 호올로 물러가 나는 내가 사랑하는 마른 풀의 향기를 마실 것입니다.
(가을 나그네 - 소리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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