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리 부부송 / 김인호
늘,
영취산에서 꽃을 들어 뛰어난 기틀을 보이시니
눈 먼 거북이가 물 위에 뜬 나무를 만난 것 같네.
가섭 존자 빙그레 미소 짓지 않았더라면
한 없이 맑은 바람 누구에게 주었을꼬.
- 삽계 익(霅溪 益)
영취염화시상기(靈鷲拈華示上機)
긍동부목접맹구(肯同浮木接盲龜)
음광불시미미소(飮光不是微微笑)
무한청풍부여수(無限淸風附與誰)
영취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말없이 꽃을 들어 대중들에게 보이니
가섭 존자만이 홀로 빙그레 미소 지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있는 정법안장 열반묘심 실상무상 미묘법문을 문자를 세우지 않고
가르침 바깥에 따로 전하여 마하가섭에게 부촉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사건을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대표적인 사례로 뽑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꽃을 들어 보이고 미소 짓는 일이 있고 법을 전한 일이
있다 믿는다면 이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을 비방하는 일입니다.
문자를 세우지 않고 가르침 바깥에 따로 전한 정법안장 열반묘심
실상무상 미묘법문은 꽃을 들어 보이고 미소 짓는 곳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하려야 전할 수 없고 받으려야 받을 수 없는 곳에 있습니다.
있다는 이 말도 허물이 큽니다.
가섭 존자가 빙그레 미소 지은 뜻을 참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미소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는 일이 바로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눈앞의 일임이 분명해야 합니다.
석가모니가 꽃을 들어 전하려는 것이 본래
스스로에게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보아야만 합니다.
바로 그러할 때야 비로소 영산회상이 아직 흩어지지 않았더라는
옛사람의 말씀에 몸소 계합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 사람마다 한없이 맑은 이 바람이 아무 모자람 없이 갖추어져 있어
언제 어디서나 쓰고자 하면 바로 쓰고 있습니다.
전한 바 없이 전한 법을, 받은 바 없이 받아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맑은 바람은 지금 어디서 불고 있습니까?
화단의 장미가 붉습니다.
- 몽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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