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오월 / 피천득

차 지운 2021. 5. 9. 20:10









    오월 / 피천득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
    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가고 있다. 어느듯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Poem'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젓는 소리 / 피천득  (0) 2021.05.16
오월 어느 날 / 목필균  (0) 2021.05.16
5월을 드립니다 - 오광수  (0) 2021.05.02
4월이 가면 - 손 정봉  (0) 2021.04.25
오늘처럼 햇살이 눈부신 날엔... 한효순  (0) 2021.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