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개한 문門
-김기찬
1.
숨쉬는 것들에는 문이 있어, 너나없이 문을 열어 돋보이는 것이 있
어, 여기 저기 도드라진 것들의 문들로 가득해져가는, 사월과 5월의
문고리를 잡아당기면, 노루귀는 노루귀만한 문을 열고, 산괴불주머니
는 산괴불주머니만한 쪽창을 여는 아침, 민들레는 노란 우산을 활짝
펴들고, 단풍나무는 아직 젖은 손바닥을 꺼내 말리고, 또 햇살은 더덕
순을 감아쥐고 산 전체를 불끈 들어올리는,
2.
그런 봄 마루에 앉아 보면,
3.
형형색색 돋아나는 문이 있어, 크고 작은 문들로 모자이크한 이부
자리 꽃문이 있어, 누구나 한번쯤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는, 깊고 고
요한 문이 있어, 이 문이 저 문 같고, 저 문이 이 문 같은, 그런 문이
분명코 있어, 아무튼, 아직 열리지 않은 밀봉된 유월과 7월이라는 문
짝을 찾아, 문門 열어라, 문門 열어라,지상을 망치로 두드리는 딱따구
리, 나를 두드리는 내 머리통 속 불면의 멍텅구리가 있어,
4.
문門이 문을 열고 빤히 쳐다보는 만계滿棨,
5.
나비 같은 내가, 사막 위를 날아 쥐락펴락 먼 길 헤쳐온 내가, 해와
달이 밤낮으로 들락거려 닳고, 닳은 문지방을 넘어, 개미가 들어가고
청벌레가 기어나오는, 봄의 밀실로 들어가 살짝 문 닫아걸고 꽃잠이
라고 자고 싶은, 그런 봄꿈에 물컹 젖어 내 창자 속까지 환해지는, 그
러니까,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내 마음 처로 들 수 있는, 사월과 5월
이 왈칵 토해놓은, 만개滿開한 문들로 뭉뚱그린 크고 환한,
-출처:계간<시와산문 2009. 봄호>에서
“산속에서 무엇을 하세요?”
할머니가 간드러지게 묻는다.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무슨 공부를 하세요?”
“마음을 닦는 공부를 합니다.”
할머니는 신기한 듯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
“마음을 닦아서 무엇 하려고요?”
해월이 대답한다.
“목동은 소를 다루고, 목수는 나무를 다루지요.
지혜있는 사람은 자신을 다룹니다.
자신을 다루는 일은 무슨 일보다 중요합니다.
자신을 다루고 이끌지 못하면 고통 속에서 나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얼굴을 약하게 씰룩거리며 다시 강하게 물었다.
“행복을 위해서 공부하는 것인가요?”
해월은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싶어졌다.
“맞습니다. 행복을 위한 것이지요. 한때 일시적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행복하기 위해서…
거친 나의 마음을 잘 다루고 이끌어서 자아를 완성시키는 일입니다.”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자아를 완성시킨 마음으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 석암스님의 소설 <군야>중에서
When You Say Nothing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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