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만 싣고 돌아오도다 - 야보도천(冶父道川)
길고 긴 낚싯줄을 곧게 드리우니
한 물결이 막 일어남에 일만 물결이 따라 일어나도다.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가워 고기가 물지 않으니
달은 밝은데 배에 가득히 허공만 싣고 돌아오도다.
千尺絲綸直下垂 一派纔動萬波隨
천척사륜직하수 일파재동만파수
夜靜水寒魚不食 滿船空載月明歸
야정수한어불식 만선공재월명귀
이 글은 『금강경오가해』의 야보도천 선사의 게송이다.
야보도천은 당나라 때 스님이나 생몰년대 미상이다.
글이 워낙 명문이며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아서
사찰에서 아침종성을 할 때 반드시 읊조린다.
『금강경』에서
“온갖 견해란 실은 견해가 아니고 그 이름이 견해일 뿐이다.
법이라는 생각도 내지 말라.”라고 하였다.
그것에 대하여 야보 스님은
“밥이 오면 입을 벌리고 잠이 오면 눈을 감는다.”라 하면서
이 게송으로 부연하였다.
모든 것이 저절로 그러하고 완전무결한데
굳이 법이라는 생각을 내지 말라.
중생을 제도한다고는 하지만
조용한 연못에 낚싯줄을 드리워 물결만 일으킨 격이다.
그러므로 법이라는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한다.
물이 차가워 고기가 물지 않는다고는 하나
고기가 물지 않는다는 말은 배가 부르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 모든 생명들이 그대로 완전무결한 존재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돌아오는 그 마음은 텅 빈 배에 허공만 가득 싣고
달 밝은 밤에 돌아오는 것과 같은 절묘한 아름다움이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마음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 시집-『수평선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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