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 교향곡 5번 ‘운명’(Beethoven, Symphony No.5 in C minor)
Beethoven, Symphony No.5 in C minor
베토벤 / 교향곡 5번 ‘운명’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작품 구성 및 해설
제 1 악장 소나타형식 Allegro con brio
네 개의 음으로 된 그 유명한 제1주재가 힘차게 연주된다. 이 것은 남성적이고 장쾌하고 호방하다. 이 주재는 여러 모양으로 변형되어 나타나면서 곡은 클라이맥스로 향하여 박진감이 더해진다. 호른 독주의 브릿지에 이어 바이올린, 클라리넷, 풀륫이 차례로 제2 주재를 부드럽게 연주한다. 보통 제1주재가 남성적이면 제2주재는 여성적이고 부드럽게 구성되어 조화를 이루어 나간다. 발전부에서는 화려한 음색의 호른의 연주에서 시작하여 시종일관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주재는 종횡무진한 활약을 거듭하여 드디어 최고의 정점에서 재현부로 이어진다. 매력적인 오보의 Adagio 연주가 잠간 휴식감을 주고는 다시 박진감을 더하여 나가다가 화려한 코다로 장엄한 끝마침을 한다.
제 1악장: Allegro con brio C단조 2/4박자
제 2 악장 변주곡 형식 Adagio con moto
변주곡 형식이지만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구성이다. 비올라와 첼로가 연주하는 주재가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역시 곡은 전체적으로 긴장감도는 구성이다. 처절하게도 위풍당당한 제2주재가 상행의 가락을 연주하면서 박진감으로 넘쳐나게 곡을 이끌어 나간다. 이어 1, 2, 3의 변주가 곡을 수놓아가면서 사이사이에 힘찬 제 2주재를 넣어 더욱 처절하게 운명과 싸움을 계속하여 나가는 것이다. 로망롤랭은 이 악장을 베토벤이 운명과 엎치락뒤치락 투쟁하는 장면을 그린 것 같다고 표현하였다.
제 2악장: Andante con moto Ab장조, 3/8박자
제 3 악장 스케르쪼와 트리오 Allegro
스케르쪼의 주재는 상행하는 분산화음형의 가락으로 나타나지만 곧 이어 운명의 주재가 그 모양을 바꾸어 다시 3박자로 나타난다. 두 개의 주재가 번갈아 주고 받다가 트리오 부분으로 넘어간다. 트리오 부분은 푸가기법이 도입되어 박진감 넘쳐 나면서도 조용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다시 스케르쪼가 나타나고 드디어 폭풍 전야의 고요함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제 3악장: Allegro C단조 3/4박자
제 4 악장 피날레. 소나타형식Allegro
3악장의 끝에서 폭풍전야의 고요함은 크레센도 되다가 악장 사이의 중단이 없이 드디어 폭발하여 승리의 함성을 내어 지르는 제1주제를 튜티로 연주한다. 베토벤은 드디어 운명과의 처절한 싸움에서 승리하여 승리의 함성을 내어 지르는 것 같다고 로망롤랭이 말했다. 그래서 이 악장을 ‘승리의 악장’이라고도 불린다. 1, 2, 3 악장은 사실 이 4악장을 향하여 힘을 축적시켜 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연결부분을 거쳐서 제2주제의 처절한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연결부분과 코데타를 거쳐 곡은 힘차게 발전부를 향해 나간다. 제1주제와 제2주제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발전부는 힘찬 발전을 계속하다가 잠시 3악장의 끝부분 폭풍전야를 만들었던 부분을 다시 내 세운 다음 재현부로 돌입한다. 이 곡의 특징인 대단한 규모의 코다로 화려한 끝을 장식한다.
제 4악장: Allegro C장조 4/4박자
Heinrich Schiff conducts Beethoven's Symphony No.5 Op.67
Heinrich Schiff, conductor
Radio Kamer Filharmonie
Concertgebouw Amsterdam, 2010.09.26
첼리스트이자 지휘자인 하인리히 시프(1952~ )가 지휘하는 HD영상입니다. 하인리히 시프는 건강이 나빠 2008년 빈 체임버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에서 물러났는데 2010년 11월의 이 공연을 보니 건강을 회복한 듯하군요. 우람한 체구로 펼치는 지휘 모습이 아주 박력 있습니다.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드린다”
로맹 롤랑이 “베토벤의 일생은 태풍이 휘몰아치는 하루와도 같았다”고 했듯이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최초의 큰 시련은 26세 때부터 시작된 귓병이었다. 30대 초에 거의 귀머거리가 되었다. 이 병으로 그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절망했는지는 32세 때 가을에 쓴 저 비통한 ‘하일리겐슈타트 유서’에 잘 나타나 있다.▶베토벤이 사용하던 보청기 코넷
그러나 베토벤은 운명에 대해 과감한 도전을 개시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였다. 그 제2의 인생의 서두를 장식하는 작품은 교향곡 3번 ‘영웅’이지만, 꽃을 피워낸 작품은 교향곡 5번이다. 베토벤 자신은 5번보다도 3번 ‘영웅’에 더 큰 애착을 품고 있었으나, 일반 음악애호가의 인기는 초연 당시부터 5번 쪽에 쏠렸다. 그것은 3번이 너무 거대하고 어딘가 짜임새가 엉성해서 청중의 인내력을 넘어선 데 비해 5번은 비교적 간결하며 단 한 음도 버릴 데가 없는 정밀하고 견고한 구성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운명’이라는 이름은 베토벤이 한 말에서 유래되었다. 어느 날 베토벤의 제자 쉰들러가 1악장 서두 테마의 뜻이 무엇이냐고 묻자 베토벤이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드린다”라고 했다고 한다. 굳이 ‘운명’이라 일컫지 않아도 이 곡을 듣노라면 가혹한 운명과 싸워서 “그 운명의 목을 조르는”(파울 베커) 베토벤의 모습이 역력하게 떠오른다.
베토벤은 ‘영웅’을 완성한 직후인 1804년부터 ‘운명’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곡들 때문에 작업이 미루어지다가 1807~1808년경에 완성되었다. 그때 베토벤은 6번 ‘전원’의 작곡도 병행하였다. 그래서 5번이 초연되던 1808년 12월 22일, 6번의 초연도 함께 가졌다. 그런데 6번이 먼저 연주되는 바람에 5번이 6번보다 세상에 늦게 나왔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의 베토벤은 큰 시련을 겪고 있었다. 30대 중반의 베토벤의 귀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고, 나폴레옹이 빈을 점령하여 세상이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러니 이 교향곡에 대해 운명을 극복하는 인간의 의지와 환희를 그렸다고 해석하는 것도 그럴 듯하다. 곡을 들으면 1악장에서 시련과 고뇌가, 2악장에서 다시 찾은 평온이, 3악장에서 쉼 없는 열정이, 4악장에서 달성한 자의 환희가 느껴진다.
이 곡은 초연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클래식 음악을 상징하는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서두 4개의 음 테마가 2차 세계대전 당시 BBC뉴스의 시그널로 쓰여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렇게 된 이유는 이 리듬이 모스부호 V, 즉 승리를 나타내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시에는 적국 작곡가의 음악 연주를 꺼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곡이 독일과 적이었던 영국의 국영방송 시그널로 쓰였다는 것은, 누구나 이 곡이 인간 사이의 갈등이나 전쟁 따위를 뛰어넘는 인류의 명곡임을 인정했다는 것이 아닐까?
괴테는 “나는 이 교향곡을 들으면 천정이 당장에라도 와르르 무너질 듯 마구 흔들리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슈만은 이 곡을 듣던 한 어린이가 마지막 악장이 시작되자 “무서워!” 하고 비명을 지르며 어머니 품에 파고들었다는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다. 어쨌든 이 곡만큼 인간이 지닌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식 없이 선명하게 드러낸 음악은 달리 없을 것이다.
Paavo Järvi conducts Beethoven's Symphony No.5 Op.67
Paavo Järvi, conductor
Deutsche Kammerphilharmonie Bremen
2006.08.27
단 한 음도 버릴 데가 없는 치밀한 구성력
전곡을 살펴보면 베토벤은 이 음악을 하나의 테마로 주도면밀하게 구성해 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테마는 베토벤 생애의 후반기를 사로잡고 있던 ‘고뇌를 극복하고 환희에로’라는 신념과도 일맥상통한다.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파울 베커는 이 곡의 각 악장마다 ‘몸부림’ ‘희망’ ‘의심’ ‘승리’라는 부제를 붙였다. 특히 3악장은 곧바로 끝나지 않고 종지가 4악장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작곡을 하고 있는 베토벤. 판화, 원작 카를 슐뢰서, 1890년경
1악장: 알레그로 콘 브리오Allegro con brio
소나타 형식. 구성력이 확고하며 격렬함을 지닌 악장이다. ‘운명의 동기’라고 일컫는 힘찬 네 개의 음으로 시작하는 제1테마가 1악장 전체를 지배한다. 이 부분이야말로 이 교향곡의 백미 중 백미이다. 포효하는 제1테마와 이와는 대조적인 부드러운 제2테마가 중심이 되어 소나타 형식의 원칙을 좇아 악장 전체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짜여 있다. 그래서 어느 음악사학자는 “베토벤은 5교향곡 전체를 단 네 개의 음 위에 구축했다”고 평을 한 모양이다.
2악장: 안단테 콘 모토Andante con moto
자유로운 변주 형식의 평화스러운 기분이 넘치는 악장이다. 싸움이 끝난 뒤의 휴식과 명상을 음악 속에 표현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아주 적절한 안배이다. 낮고 차분한 선율로 현악기와 목관악기들이 서정적인 비장미를 나타내면서 인간 운명의 과정을 담담하게 토로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스러운 기분도 그리 오래 계속되지는 않는다.
3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Scherzo. Allegro
3부 형식. ‘운명의 동기’가 모습을 바꾸어 다시 나타나며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두 개의 스케르초 주제가 빠른 템포의 춤추는 듯한 리듬을 선사하지만 경쾌하기보다는 오히려 비통한 소리로 절규하는 듯하다. 이 을씨년스러운 부분을 거쳐 선율은 힘을 배가시켜 가나 분출 직전에 4악장으로 끊기지 않고 넘어간다.
4악장: 알레그로Allegro
소나타 형식. 투티(총주)의 웅장한 제1테마가 광채를 뿜으며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마치 운명과 대적하여 싸워 승리한 자를 위한 개선가처럼 당당하다. 베토벤의 신념인 ‘고뇌를 극복하고 환희에로’가 구현되는 부분이다. 제2테마는 춤추듯 경쾌하다. 발전부에서는 3악장의 끝에서처럼 힘을 증대시키다가 클라이맥스로 들어간 후, 힘차고 호방한 타격으로 모든 긴장을 폭발시키며 대단원은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