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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의 정물

차 지운 2020. 4. 19. 15:55

 

 

 

 

 

 

 

 

 



 

 

 

 

세잔의 사과

 

 

 1852년 가을, 남프랑스 엑상 프로방스의 작은 시골 중학교 교정 안으로 머뭇거리며 사과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들어선 남루한 소년은 전날 동급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때 나타나 아이들을 혼내준 덩치 큰 아이에게 다가가

바구니를 내밀었다. 병약하고 지독한 근시여서 늘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던 이 소년은 후에 자연주의 소설이론

으로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에밀 졸라이며 힘이 세고 덩치가 큰 아이는 ‘근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린 폴 세잔이다.

 훗날 문학과 미술에 큰 영향을 미친 두 소년의 우정은 이렇게 고마움이 담긴 사과로 시작되었다.

 

 

 

사과와 오렌지 (1895~1900)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역사상 세 번째로 유명한 세잔의 사과



흔히 역사 속에서 가장 유명한 사과로 이브의 사과, 뉴튼의 사과, 세잔의 사과를 꼽게 되는데 그 중 세잔의 사과는

이때 졸라가 건네준 사과에 깊은 인상을 받은 세잔이 그 후 자신의 작품 속 주요 모티브로 자주 등장시킨 것은 아닐

까 라는 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당시 졸라는 늘 인정머리 없는 냉혹함이 담겨 있게 마련인 철부지 아이들의 조롱에 시달렸는데 훗날 그는 이 시절

을 ‘동급생들에 둘러싸여 고문당했던 삶’으로 기억하였다 한다.
졸라와는 달리 은행가 아버지를 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세잔은 지나치게 엄격하고, 지배적인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방황하던 우울한 문학 소년이었다. 지금은 위대한 화가로 남은 세잔이 어린 시절엔 보들레르의 ‘악의 꽃’들을 모조리

암기하며 시인이 되고자 꿈을 꾸었으며 반면 세잔이 낙선한 부르봉 중학교 미술대회의 수상자는 졸라였다 하니 문학

과 미술을 넘나들던 그들의 재능을 엿볼 수 있다. 

 

 

 

 

 

 

 

 

그 후 졸라와 세잔은 엑상프로방스의 아름다운 산천을 함께 어울려 다니며 여름철이면 근처 강물에서 멱을

감기도하고 문학에 대한 열정과 예술적 정서를 함께 공유하였는데 아마 고독한 두 소년들은 서로의 우정을

통해 숨 막힐 듯한 자신들의 청소년기를 극복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 후 더 이상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시골

생활을 정리하고 파리로 떠난 졸라와 아버지의 종용에 못 이겨 법대에 등록한 후 낙심에 빠진 세잔은 서로를

충고하고 격려하는 편지를 그 후 30년 이상 주고받게 된다. 아마도 “물감으로 얼룩진 법관 복을 입은, 익명

의 예술가는 되지 말게”라는 졸라의 끈질긴 질타와 부추김이 없었더라면, 위대한 화가 세잔은 우리에게 존재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후 남다른 자존심과, 강한 기질의 두 사람 사이에는 복잡한 감정과 긴장이 찾아오는데 특히 소설

‘목로주점’과 ‘나나’로 세잔보다 먼저 무명에서 벗어난 졸라와 자신의 예술성을 진정으로 이해 못 해주는 졸라

에 대한 섭섭함을 지닌 세잔 사이의 긴장감은 결국 1886년 졸라가 소설 ‘작품’(L’oeuvre)의 등장인물 중 실패한

그림 앞에서 자살하는 무능한 화가를 세잔과 닮게 묘사함으로 해서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긴 채 끝이 나게 된다.

책을 읽은 세잔은 “이렇게 훌륭하게 추억을 담아내준 데 대해 감사하네”라는 짤막한 편지를 끝으로 출구 없는

 자신만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 된다.

 

 

 

 

 

 

 

 

 

 

 

 

 

 

세잔의 작품 속에는 유독 강가에서 목욕하는 장면과 사과가 많이 등장한다. “모든 자연현상은 원기둥, 구,

원뿔로 함축된다”는 이론을 제시하여 20세기 초 야수파와 입체파, 큐비즘을 낳게 한 세잔이지만 난 왠지

 그의 사과 정물화와 목욕도를 보면 자연을 지배하는 원초적인 힘을 포착하려 했던 위대한 세잔보다는

에밀 졸라의 사망소식에 울며 아틀리에로 뛰어 들어가 오랜 시간을 칩거하며 참담한 고통 속에 있었다는

 그의 마음을 헤아리며 상처받고, 그리워하고, 회한에 잠겼을 인간 세잔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글; 메이 정

 

 

 

 

 

 

 

 

 

 

 

 

 

 

 

 

 

 

 

 

 

 

 

 

 

 

 

 

 

 

 

 

 

 

 

 

 

 

 

 

 

 

 

 

 

 

 

 

 


 
 
 
 
 
 
 
 
 
 
 
 
 
 
 
 
 
 
 
 
 
 
 
 
 
 
 
 
 
 

 

 

 

 

 

 

 

 

 

 

 

 

 

 

 

 

 

 

 

 

 

 

 

 

 

 

세잔의 사과, 정물화  

 

 

 

 

  

물잔과 사과를 그린 정물화 작품으로 공간의 깊이를 강조하는 칼도 보입니다

 

 

 

 

Apples, 1877~78년

 

 

 

세잔이 마지막으로 참가했던 1877년 인상주의전에서 낙선을 한 후

비평가들과 수집가들의 몰이해에 실망을 했습니다

이후 그는 고향인 엑상 프로방스에 내려가기로 결심하고

친구에게 이런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과 하나로 파리를 놀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Still Life with Plate of Cherries, 1885~87년

 

흰접시에 담긴 맛있는 체리와 복숭아가 보입니다

 

 

 

 

 

 

 

Table, Napkin and Fruit, 1895~19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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